
영화 '엑시트(Exit, 2019)'는 한국 재난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유독가스라는 재난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생존 투쟁을 그리면서도, 억지웃음과 신파를 배제한 깔끔한 연출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취업 준비생 용남과 비정규직 의주가 클라이밍 실력을 활용해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은 단순한 재난 탈출을 넘어 청년 세대가 처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담아냅니다.
'엑시트' 한국형 재난영화의 새로운 가능성
영화 '엑시트'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 한국 재난 영화의 클리셰를 과감히 벗어났다는 점입니다. '해운대'로 대표되는 한국형 재난 영화는 시종일관 억지로 웃기는 코미디와 후반의 처절한 신파극으로 구성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엑시트'는 이러한 공식을 완전히 탈피했습니다. 이 영화에는 억지웃음이 없습니다. 웃음을 주기 위해 과잉된 연기를 하는 장면을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또한 신파가 없습니다. 한국 오락 영화에서 신파를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2019년에 흥행한 '극한직업'과 '기생충' 역시 신파를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들이었습니다. '해운대'가 보여준 웃음과 눈물로 범벅이 된 천만이라는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셈입니다. 더 나아가 '엑시트'는 한국 영화가 즐겨 사용하던 여러 클리셰들을 파괴했습니다. 항상 상황 파악을 못하고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이른바 고구마 캐릭터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면적이고 기능적인 악당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고위층이나 대기업의 음모와 같은 음모론 분위기에서도 벗어났습니다. 그간 한국 영화들이 짬뽕탕을 만들 듯 즐겨 사용하던 재료들을 전부 버리고 깨끗하게 재난 영화에만 집중했습니다. 재난의 종류를 유독가스로 선택한 것도 영리한 판단이었습니다. 지진이나 쓰나미, 좀비 바이러스 같은 재난들에 비해 유독가스는 표현에 있어 요구되는 비용이 대폭 감소합니다. 짙은 안개처럼만 묘사해도 충분히 위험을 표현할 수 있어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백두산을 터뜨리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재난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기존 한국 재난영화 | 영화 엑시트 |
|---|---|
| 억지 코미디 + 신파 | 자연스러운 유머 + 긴장감 |
| 고구마 캐릭터 등장 | 합리적인 인물들 |
| 음모론 중심 플롯 | 생존 투쟁 중심 |
| 과장된 CG와 스케일 | 현실적인 재난 표현 |
할리우드 스타일의 화려함도 거부했습니다. '스카이스크래퍼' 같은 영화에서 드웨인 존슨은 재난의 원인을 제거하고 사람들을 지키는 히어로로 등장합니다. 만약 '엑시트'에 그런 캐릭터가 있었다면, 특수부대 출신이 악당들을 무찌르고 유독가스 확산을 막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엑시트'는 나쁜 악당도, 도시를 구하는 히어로도 거부하고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합니다. 바로 생존 투쟁입니다.
조정석과 임윤아가 연기한 청년세대의 초상
영화의 주인공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는 현재 청년 세대가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캐릭터들입니다. 용남은 취업 준비생으로, 영화 시작부터 가장 최근에 넣은 회사에서 탈락 메시지를 받습니다. 영화는 용남의 처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줍니다. 대낮에 동네 놀이터에서 철봉 운동을 하는 그를 할머니들이 바라보고, 조카와 조카 친구들은 '이상한 아저씨'로 취급합니다. 출근도 하지 않고 운동하는 용남이 사회에서 어떻게 변두리인으로 취급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의주는 '정의주'라는 이름처럼 진취적이고 똑똑하며 눈치가 빠른 여성이지만, 정작 하고 있는 일은 '구름 정원'의 부점장입니다. 말이 부점장이지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는 비정규직인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의주는 점장으로부터 노골적인 대시, 거의 치근덕거리는 수준의 성희롱에 가까운 상황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처한 일자리 환경은 최악입니다. 이렇게 영화는 지금의 청년들이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취업에 실패한 사람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고, 그나마 아르바이트 같은 일자리에서 일하는 청춘들은 그 젊음을 착취당하며 성희롱까지 감내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지금 청년들이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청년들의 현실을 재난으로 묘사합니다. 스멀스멀 위로 올라오며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하얀 연기, 유독가스는 방독면 없이는 10초도 견디기 힘들고 세상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으며 헬기 구조도 오지 않는 현실을 상징합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매 순간 세상은 위기로 청년들을 밀어 넣기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세대가 처한 재난과도 같은 현실입니다. 조정석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특히 빛을 발합니다. 클라이밍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보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몸에 힘을 주게 만드는 긴장감 조성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더 높이 가기 위해 자신의 생명줄을 빼내야 하는 순간의 절박함도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임윤아의 연기도 과거 작품들에 비해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족들을 헬기에 태우고 자신들은 남은 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던 의주가 그들이 떠나고 나서 펑펑 우는 장면은 영화의 가장 좋은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느낄 절박함과 두려움을 솔직하게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재난 속에서 발견한 청년세대의 용기와 메시지
'엑시트'는 단순한 재난 탈출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 속 공간들은 우리의 삶에 굉장히 밀접한 곳들입니다. 삼겹살집, 헬스장, 보습학원. 그리고 주위에 펼쳐진 소품들에는 모두 이 시대를 향한 메시지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종량제 봉투를 뒤집어 쓰고 빌딩을 기어오르는 청춘의 모습은 우리가 이를 악물고 기어오르고 있는 현실을 상징합니다. 빌딩에서 쏟아져 내리는 신혼가구들은 결혼의 꿈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유독가스가 퍼지는데도 학원에는 아이들이 갇혀 있습니다. 그 시간까지 여전히 학원에 갇혀 있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미래의 청춘이 될 이들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재난 현장을 보도하며 뉴스 앵커가 날린 한마디 "사고 현장의 여러분, 부디 힘내시길 바랍니다"는 무책임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지금 청춘들에게 이 영화가 건넬 수 있는 것은 결국 힘내라는 말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순간 "제발 좀 봐줘"라는 조정석의 외침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사고 현장에서 살아가면서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 버려진 청년 세대의 외침처럼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 영화 속 장치 | 상징하는 의미 |
|---|---|
| 위로 올라오는 유독가스 | 청년들을 조여오는 현실의 압박 |
| 종량제 봉투를 쓰고 빌딩 등반 | 이를 악물고 기어오르는 청춘 |
| 쏟아지는 신혼가구 | 무너지는 결혼의 꿈 |
| 학원에 갇힌 아이들 | 미래 청년 세대의 슬픈 현실 |
그럼에도 영화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용남과 의주는 약하고 어설프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나설 줄 아는 인물들입니다. 가족들을 구하고 자신들은 남는 선택을 하며, 끝까지 서로를 의지하며 가장 높은 크레인까지 도달합니다. 좋은 일을 했지만 영웅은 아니기에, 살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평범한 청년들의 용기가 영화의 진짜 메시지입니다. 방독면 사용법, 살아남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고 종량제 봉투를 몸에 두르는 합리적인 행동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그리고 가장 인상적으로 재난 상황 대처법을 소개한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높은 빌딩을 오르고자 했던 우리들, 구름 정원 같은 구시대 문화들, 그 사이에 놓인 청년 세대의 암울한 시대를 독가스에 쫓겨 달려야만 하는 상황으로 비유하면서도, 끝내 하늘은 개고 빛이 내려올 거라는 희망찬 메시지를 전합니다. 물론 영화에는 약점도 있습니다. 유독가스가 오로지 이야기 진행을 위한 작위적인 도구에 그친다는 점, 후반으로 갈수록 유독가스의 위협이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특히 다짜고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분위기는 다소 이상했습니다. 수천 명이 사망했을 대형 재해인데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너무 밝고 명랑합니다. 과잉된 감정을 피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끝에서 너무 즐겁게 엔딩을 내버린 탓에 재난 자체가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 최대의 약점입니다. '엑시트'는 시원하고 깔끔하고 단순해서 좋은 영화입니다. 장르 영화가 장르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작품이며, '해운대'로 대표되는 억지 신파 재난물의 흐름을 돌려버린 중요한 작품입니다. 재난을 배경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흔한 주인공 이야기에 조정석 특유의 개그감이 섞여 무겁고 진중한 상황에도 웃음을 자아내며, 재난의 어두운 면보다는 해결에 중점을 두고 인간관계와 한 인간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바람직한 재난 액션 영화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영화 '엑시트'는 기존 한국 재난 영화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A. '엑시트'는 기존 한국 재난 영화의 특징이었던 억지 코미디와 신파를 완전히 배제했습니다. '해운대'처럼 웃음과 눈물로 관객을 조작하는 대신, 재난 상황과 생존 투쟁에 집중하여 긴장감 있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줍니다. 또한 고구마 캐릭터나 음모론 같은 클리셰도 피하고 합리적인 인물들의 행동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Q. 영화가 청년 세대의 현실을 어떻게 은유하고 있나요?
A. 영화는 위로 올라오는 유독가스를 통해 청년들을 조여오는 현실의 압박을 상징합니다. 취업 실패자 용남과 비정규직 의주가 살기 위해 끊임없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은, 청년들이 처한 재난 같은 현실과 오를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보여줍니다. 종량제 봉투를 쓰고 빌딩을 오르는 장면, 쏟아지는 신혼가구 등 영화 속 모든 요소가 청년 세대의 절박한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Q.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무엇인가요?
A. 가장 큰 약점은 영화 후반부의 지나치게 밝은 해피엔딩입니다. 수천 명이 사망했을 대형 재해임에도 불구하고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너무 명랑하고, 재난이 끝난 후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가볍게 처리되어 영화가 다룬 재난 자체의 무게감이 희석되었습니다. 또한 후반으로 갈수록 유독가스의 위협이 긴장감을 주지 못하고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처럼 느껴지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출처]
라이너의 컬쳐쇼크 - 영화 엑시트 리뷰: https://youtu.be/_H_zY2i0NmU?si=DoDsXDSZAOYPKrZW